서울 힐링 스팟, 성북동 길상사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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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떠나는 여행

서울 힐링 스팟, 성북동 길상사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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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입구에 다다르면 남다른 느낌이 든다

성북구 성북동에 길상사라는 사찰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오르는 길이 뭔지 모르게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자세히 보니 대사관 관저가 생각보다 많았다. 그렇다면 여기는 부자동네? 그런 생각을 하고 다시 바라보니 집들이 대부분 단독 주택이고 널찍하며 담들이 높고 CCTV가 설치되어 있네. 이정도면 기생충에 나왔던 그런 집인가 보다. 부자 동네에 사찰이 있다면 이 사찰 또한 부자 사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걸린 연등

길상사라는 뜻은 길하고 상서로운 절이라는 의미란다. 입구를 들어 서면서 느낌이 좋다. 도심 속 성북동에 있는 사찰인데도 깊은 멋이 있다. 서울 도심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들어오는 곳에 이런 깊은 맛을 내는 절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입구에서 맡아본 냄새는 현존하는 도시의 찌린 냄새가 아닌 일제 구한말 시기의 정돈되지 않은 비릿함이랄까. 느낌이 그랬다. 이곳 길상사는 접근하기 쉬운 사찰이 아니다. 좀더 둘러봐야 알겠지만 입구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아픔이 남아있는 듯한, 아니 못다이룬 광복이 아픔이 남아있는 듯한 사찰로 느껴진다.

 

길상사 맨 위쪽으로 난 길

길상사를 설명하려면 김영한이라는 여자가 등장해야 한다. 이 사람이 대원각이라는 한정식집 주인이라는 사람도 있고 그 옛날 현대식 요정을 운영하던 주인이라는 사람도 있다. 한마디로 요식업을 운영하던 사장님이라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그리고 시인 백석과 법정 스님도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법정스님이 기거하셨다는 진영각

데이지 꽃들이 한창이던 봄. 서울에는 대낮부터 비가 내렸다. 봄비는 꽃내음과 같이 내리며, 어둡지 않으며 밝다. 대낮이지만 봄비 덕분에 성북동 대원각에는 손님들이 있었다. 비 때문이었을까? 술은 마시는 손님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어지러운 세상을 걱정하고, 흔들리고 있는 나라를 걱정하고, 젊은이들의 이상을 걱정하고, 내리는 봄비를 걱정하고 있었다.

 

법정 스님의 초상화
법정스님이 입었던 옷

술잔이 오가고 취기가 올랐다. 손님들은 저마다 한숨과 걱정을 쏟아냈다. 술잔에는 술이 가득 담겼으나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 자리에서 백석은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몇 줄의 시로 세상을 표현했다. 동행한 손님들은 맞장구치며 또 한잔을 비웠다. 김영한은 백석의 시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았다. 자신은 음식 팔아 술 팔아 돈벌며 사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라를 걱정하고 청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백석의 이상이 남달라 보였다.

 

스님들이 기거하시는 곳

봄 비에 젖어 소주에 젖어 취기에 흔들리던 백석의 모습을 김영한은 기억한다. 밤새 흰 눈이 푹푹 내리던 밤. 웃음이 잦아지면서 즐거워하던 백석의 모습을 김영한은 기억한다. 가야금 소리, 술잔 부딪히는 소리, 나라의 미래와 가치관을 노래하던 시인의 한줄과 함께 김영한은 오래도록 시인 백석을 가슴에 담아 놓았다. 

 

길상사 곳곳에 자연과 불상이 어우러져 있다.

백석도 대원각을 기억한다. 가야금 소리 은은할 때 말없이 소주 한 잔을 마시며 보았던 김영한을 기억한다. 봄비에 젖은 머리카락과 자신을 쳐다보던 우수에 젖은 눈망울을 기억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걱정하며 위안을 주려하던 김영한을 기억한다. 새벽 별이 지고 여명이 떠오르던 때에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나타샤를 기억한다.

 

길상사를 보시한 김영한의 모습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타샤는 백석을 사랑했다. 백석도 나타샤를 사랑했다. 흰 눈 푹푹 내리는 날에도 봄 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날에도 가야금 소리는 소주와 함께 은은하게 대원각에 울려 퍼졌다.

 

때로는 자연인 듯 때로는 도시인 듯한 길상사 내부 모습

김영한이 법정스님께 대원각을 희사하겠노라 말씀을 드렸으나 법정은 사양했다. 백석의 생일이면 어김없이 금식을 하는 나타샤를 보며 법정은 백석을 생각했다. 조국을 걱정하던 사람. 미래를 노래하던 선구자. 그런 시인을 연모했던 김영한은 백석을 위해 사찰을 만들어 주기를 희망했다. 법정은 받아줄만도 했으나 10년을 고사했다.

 

극락보전 앞을 지키고 있는 연꽃
흰 연꽃의 자태

 

대원각 한켠 연못에 연꽃이 피고 지기를 10년. 연꽃은 참 예뻤다. 대원각에 내노라하는 여인들보다 저 연못에 핀 두송이의 연꽃이 더 예뻤다. 사람의 청춘도 한 철이지만 연꽃은 더 짦은 시간동안 꽃을 피우며 세상을 사랑하고 진다. 하지만 연꽃은 다음해 또다시 꽃을 피운다. 그자리에 다시 꽃봉우리를 피우며 새로운 청춘을 맞는다. 인간도 다음 해 다시 피어올라 새로운 청춘을 맞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와 돌의자

200년도 더 되었다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 사람들이 쉬어간다. 가야금 소리 은은한 때 술에 취한 백석이 술을 깨고자 친구들과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 흰눈 푹푹 내리던 날 김영한이 백석과 함께 뜨거운 차 한잔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었던 그 자리. 부처님이 걷던 길을 걸으며 중생에게 불법을 가르치며 정신없이 살아가던 법정이 잠깐 쉬어갔던 돌의자.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자리이지만 돌의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느티나무도 돌의자도 200년을 버티고 있다.

 

길상 7층 보탑

길상사에는 한켠에 길상 7층 보탑이 있다.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4마리 암수 사자가 기둥 역할을 하면서 두마리는 입을 벌리고 설법을 가르치는 형상으로, 나머지 두마리는 입을 다물고 선을 행하는 형상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길상화 김영한은 저 사자들 중에 어떤 사자를 좋아했을까. 아마도 백석과 영겁의 세월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입을 연 사자를 좋아했으리라.

 

길상사를 빠져나오며 생각에 잠긴다. 처음 길상사에 발을 내딛으면서 왠지 일제시대의 정돈되지 않은 미완성의 사찰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내 생각이 옳았던 것일까 하고 되물었다. 길상사는 김영한의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미완성이었고 백석과의 미완성된 사랑을 더 이어나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렇다면 길상사에는 무엇이 존재해야 할까. 김영한과 백석에게 영겁의 세월을 이어주는 다리가 필요해 보인다. 이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존재하기 위해 그리고 길상사가 더 완전해 지기 위해 말이다.

 

극락전에 모셔진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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