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비오는 날 가볼만한 곳, 독립기념관 뚜벅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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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떠나는 여행

천안 비오는 날 가볼만한 곳, 독립기념관 뚜벅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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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 여행자는 버스를 추천한다. 천안 버스터미널, 천안역에서 400번, 383번 버스를 타면 독립기념관까지 한방에 갈 수 있다. 시간이 50분 남짓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천안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관계로 개인 승용차를 가져가도 시간이 걸린다.

 

독립기념관 입구

오래전 천안에 들어선 독립기념관을 언제인가 가보고는 여태 못가봤다. 한번 가봤으니 또 가볼 필요 있겠나 싶어 가보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네. 뚜벅이 여행자라 더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엄청 많이 왔다. 독립기념관에서 겨레의 혼을 느껴보고 싶어 왔는지, 독립기념관 입구 광장과 주변 그늘에서 텐트 쳐놓고 쉬러 왔는지. 여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 천안 병천에 있는 독립기념관에 와 있는 것을 보고 새삼 놀랐다.

 

입구에 들어서자 오히려 한가해 진 모습

밖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더니만 막상 안으로 들어오니 한가롭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독립기념관의 위용이 마주하고 뒤로 자리한 산을 보면서 풍수를 잘 모르지만 기가 막힌 곳에 들어섰구나 하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분들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한 곳인데 이왕이면 멋진 곳에 들어서야 한다는 것에 동감이다.

 

연못에 수많은 잉어들

이곳 연못을 보니 독립기념관이 건립되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가 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잉어 밥을 주는데 엄청남 잉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진으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날 우산으로 떠도 10마리는 그냥 잡힐 정도의 잉어떼다. 큰 녀석은 어른 팔뚝이 뭐야 허리만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뿌려주는 먹이를 먹으면서 잉어들도 계속 성장했으리라. 

 

광개토대왕릉비와 그에 대한 설명

이곳 독립기념관에는 일제 치하에서 독립한 것을 기리는 곳인데 역사적으로 항쟁했던 모든 것들이 기록되고 전시되어 있다. 입구에 광개토대왕릉비가 있어서 다가가 봤다. 실제 광개토대왕릉비는 접근하기도 쉽지 않아서 모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복제해서 이곳에 전시해 놓았다고 한다.

 

고구려 병사들의 모습

고구려가 북벌을 통해 영토를 늘려가고 아시아의 맹주로 활동하던 당시 이름없는 군사로 활동했었던 김서방. 우리나라 어디에서 김서방, 박서방, 이서방 하고 부르면 대부분 고개를 돌려본다는 흔한 이름. 김서방은 이름없는 군사이지만 말을 타고 긴 창을 휘두르며 전장을 누벼서 북벌에 참여했다. 그리고 거란과의 어느 전투에서 적군이 쏜 화살에 맞아 장렬하게 숨을 거두었지만, 이름없는 군사들 덕분에 고구려는 여전히 아시아의 맹주로서 거란과 말갈을 위협하며 힘을 뻗어 나갔다.

 

호국을 위해 제작된 팔만대장경

김서방의 어렴풋한 기억은 또하나 있다. 고려가 몽고의 침입을 받아 항쟁할 때 김서방은 강화도에 있었다. 1236년 몽골이 고려를 침입하자 불력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뜻으로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1251년 경에 팔만대장경을 완성하게 된다. 이때 김서방은 평민이었지만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하여 대장도감에서 산벛나무를 바닷물에 절였다가 그늘에 말려 다시 그 나무를 깎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임진왜란때 큰 역할을 했던 거북선

1952년 임진년에 발행한 임진왜란 당시 김서방의 기억은 여전히 목수였다. 일본 선봉대가 부산포로 쳐들어와 서울을 향해 북진을 하던 때에 김서방은 여수에서 평범하게 살던 평민이었다. 그런데 왜군에 의해 국토가 쑥대밭이 되고 곡창지대인 호남지방까지 넘본다는 소식에 이순신 장군이 급히 목수들을 소집했을때 영문도 모르고 군영에 들어갔다. 거기서 이순신 장군의 지시를 받아 거북선을 만들게 된다. 김서방을 비롯한 목수들의 활약으로 거북 모양의 배가 만들어졌고 이 배는 남해 곳곳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선봉이 되었다.

 

일본 헌병에게 붙잡혀 감옥으로 가는 사람들

일제가 1904년 러일전쟁 승리를 계기로 한일의정서, 1905년 을사늑약, 1907년 한일신협약을 차례로 체결하여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했다. 결국 경술년 한일합병이 이루어졌고 이때 김서방은 옥에 갇혔던 것을 기억한다. 눈이 보이지 않도록 모자를 씌우고 사람들을 줄줄이 묶어서 감옥에 가두어 고문했었다. 일제의 식민지가 싫다는 소리 한번 했다고 옥에 갖혔던 기억.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조선인들

김서방은 그렇게 감옥에 한달을 갖혀있다가 어디론가 끌려가서 강제 노동을 했었다. 배를 타고 한참을 갔었다. 남들은 거기를 배처럼 생겼다고 해서 군함도라고 불렀었다. 작고 어두운 곳에서 석탄을 캤던 기억이 남아있다. 배고픔과 총부리의 위협 속에서 하루 12시간이 넘는 고된 채탄 작업을 했었다. 쓰러지면 그냥 죽는 것이었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했던 기억이 있다.

 

독립을 위한 3.1 만세운동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들이 일제의 폭력적인 지배에 항거하여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고 나라를 되찾으려는 비폭력 만세운동이었다. 비폭력 운동이었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총칼에 죽어 나갔다. 그리고 감옥에 잡혀 들어온 사람들도 몸이 성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들은 다시 강제노역에 동원되거나 고문을 받거나 죽거나.

 

기미년 독립선언문과 33인

 

충칭에서 활동을 시작된 광복군

김서방 군함도에서 피를 토하며 살아남았다. 나라를 잃은 설움을 잘 알기에 광복군에 합류하게 된다. 1940년 중국의 충칭에서 창설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 역할을 했다. 고구려 그리고 고려를 거쳐 김서방은 전쟁에는 이골이 나 있었던 터라 나이를 먹었지만 군사훈련과 게릴라 전투에서 제법 역할을 했다.

 

일제 치하에서 평민들의 삶

때로는 평민으로 위장하여 민가에 내려가 장을 보거나 일본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다녔다. 나이먹고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라 일본군도 김서방을 특별히 경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낮에는 광복군 행동대장으로서 밤에는 정보원으로서 만주 일대를 누비고 다녔다.

 

일본군과 광복군의 치열한 전투

여기가 만주 어디인지도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저 숲속에서 진격해 오는 일본군을 명중시켜야 하는 임무다. 김서방은 총을 잘 다뤘다. 그래서 숲속에 자리를 잡고 전진해 오는 일본군을 향해 한발 한발 명중시켜 나갔다. 그렇게 광복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만주 지역에서 광복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김서방이 광복군에서 작은 활동을 하는 동안 광복군 사령부는 일본군을 탈출한 학병과 중국내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인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하여 세력을 키워나갔다. 중국의 시안에 총사령부를 설치하고 충칭, 라오허커우, 진화, 푸양 등에 지대를 설치하여 항일 무장활동을 펼쳐 나갔다. 김서방은 미군 전략첩보국(OSS)과 국내진입작전을 위한 합동군사훈련에도 참여했다. 광복을 위한 전쟁이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다.

 

상하이에서 부터의 임시정부 활동

1919년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 이후 1945년까지 광복정책을 수행하고 광복군과 협력하여 광복을 위한 전쟁을 준비해 나갔다. 윤봉길 의거를 계기로 일본은 더 포악해졌다. 그래서 임시정부는 1932년 이후 일본군을 피해 8년동안 10곳을 전전하면서 남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1940년 충칭에 정착하여 광복군을 창설하고 광복전쟁을 준비해 나갔다. 김서방은 행복했다. 드디어 광복 전쟁이 코 앞에 다가왔구나.

 

독립기념관 중앙에 있는 상징물

그러나 김서방은 조선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나이 55세. 일본 헌병에게 잡혀 호된 감옥생활을 했고 군함도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면서 햇빛도 보지 못하고 힘들어 하던 기억. 광복군에 들어가 겨우 나라를 구해보겠노라고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지칠대로 지친 김서방의 몸은 더이상 버텨주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서도 떠오르던 마지막 기억. 해방을 위해 태극기 한켠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던 것만 마지막 기억으로 남았다. 대한독립 만세.

 

독립기념관 중앙 홀 우측에 태극기

독립기념관을 나서면 처음 버스에서 내렸던 곳으로 가면 된다. 시내방향이라는 정류소가 있으니 그것을 보고 버스를 타면 실패하지 않는다. 뚜벅이 여행자도 버스로 얼마든지 독립기념관을 방문할 수 있으니 도전해 보기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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