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가을에 가볼만 한 곳. 왕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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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떠나는 여행

보령 가을에 가볼만 한 곳. 왕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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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지면 왕대사를 오른다. 보령의 서쪽 대천항 가는 길에 왕대사가 자리하고 있다. 해안도로 길에서 조금만 접어들면 산 허리에 좋은 풍광을 자랑하는 오래된 천년고찰이다. 신라 56대 경순대왕께서 고려 태조 왕건에게 신라는 선국하고 이곳으로 내려와 집을 짓고 거처하시면서 마애불을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보령 가볼만 한 곳. 왕대사 대웅전

왕이 거처한 산이라 해서 왕대산. 왕대산에 있는 사찰이라 왕대사. 별 것 아닌 작명과 해석이라 들릴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신비롭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잿빛 먼지에도 불구하고 구름 드리워진 하늘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왕대사 대웅전의 모습은 그리 크지 않지만 웅장하고 한 겨울의 바람소리 세차지만 조용하기 그지없다. 작은 연못을 지나 돌계단을 오를 때의 느낌은 그 옛날 경순왕이 눈길을 조심스레 올랐던 그 계단이렸다.

 

왼쪽에 돌계단으로 오르는 길

차를 가지고 더 올라갈 수 있으나 이왕이면 이곳 주차장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걸 추천한다. 특히 왼쪽으로 보이는 돌계단은 연인이 손잡고 올라가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한발 한발 오르면 대천 바닷가의 시원한 바닷 내음이 폐 속 깊숙이 스며들 것이다.

 

계단 중간 부분에서 바라본 왕대사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왕대사가 점점 가까워 진다. 산 허리를 에둘러 돌을 쌓고 그 위에 절을 지었다. 현대의 공법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으나 그 옛날 신라시대에 이렇게 멋진 사찰을 구상했다는 것이 놀랍다. 사진 한장 만으로는 왕대사의 정취가 다 설명되지 않는다. 돌계단을 오르는 군데군데 돌탑을 쌓아놓았다. 우리나라는 별도의 기술자가 필요없다. 누구나 돌탑 쌓는데는 일가견이 있나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왕대사 마애불

왕대사에 오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큰 바위가 있다. 그 바위에는 영겁의 시간을 거슬러 이끼와 바람에 젖은 왕대사 마애불이 자리하고 있다. 오랫동안 바람과 함께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은 머리부분, 어깨부분, 법의 왼쪽 부분 정도만 남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합장을 하고 자신들의 소원을 빌며 무릎을 꿇었던 곳. 향초가 조용히 타오르고 은은한 새소리와 풍경소리가 왕대사 마애불의 정취를 살려주는 듯 하다.

 

왕대사 대웅전의 웅장한 모습

왕대사 대웅전도 다른 여느 사찰과 같이 가장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멀리 대천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바라보면서 신라를 품고 싶어하는 경순왕의 염원을 그리워하고 있다. 긴 철길위에 검은 연기 내뿜으며 거친 숨소리 가득하던 장항선. 서천을 지나 군산까지 쉼없이 내달리며 신라인지 백제인지 모를 곳까지 달려가고 싶어하던 경순왕의 염원이 대웅전 처마에 아롱져 있다.

 

왕대사 마당 끝에 당당히 자리한 나무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 왕위를 버리고 이곳 왕대사에 머물면서 한 맺힌 가슴을 움켜쥐면서도 평화를 찾고자 그리고 마음의 짐을 덜고자 미륵불을 만들고 저 나무를 심었나 보다. 수백년 동안 왕대사를 지켜온 너는 아파도 아파하지 않고 힘들어도 내색 한 번 없이 그 긴세월을 지내왔구나. 대천 겨울의 찬 바다 바람에도 한 여름 찌는 듯한 태양에도 살갑게 온 몸을 내어주며 경순왕의 안녕과 함께 저물어가는 신라의 운명을 같이 맞았겠구나. 나그네가 말을 붙여 보는데도 아무런 말도없이 보령 벌판을 바라보고 있는 뒷 모습이 든든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다.

 

대웅전 내부의 모습

부처가 나를 엄숙한 모습으로 바라본다. 가부좌를 틀고 왼손을 무릎 위에 얹고서 무념무상으로 있는 듯 한데 자세히보면 사진 찍고 있는 나를 보고있다. 영겁의 세월을 한 곳만 응시하며 오로지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눈빛이다. 아이를 낳지 못해 눈물 흘리는 아낙에게도, 자식의 병치레를 부모님의 노환을 걱정하는 아비에게도, 좋은 처녀 점지해 달라는 돌쇠에게도 똑같은 눈빛으로 대답했을터. 간절함이 있을 수록 부처의 대답이 확실했으리라 믿는다.

 

산신각으로 올라가는 길

나무 계단으로 이어진 길은 산신각으로 향하는 길이다. 한발 한발 조심스레 올라가면 산신각 보다 산신이 먼저 보인다. 그 옛날 산군님이 내려와 어흥하던 시절. 어둠에 나뭇가지 밟고서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던 여인은 산 속 깊은 암자에서 무서움에 떨었으리라. 마음 속으로 신령님을 얼마나 외쳤을꼬.

나무 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산신각의 모습
산신각 내부에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산신

왕대사 맨 위에 자리한 산신각은 오래된 세월을 증명하듯 하얗게 바래져 있다. 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문을 열어보면 산신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에 만들어진 듯 하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곳을 지켜주시는 산신이 고맙게 느껴진다. 코로나로 흉흉해진 서해안의 민심을 산신께서 잘 돌봐주시리라 믿는다.

 

주차장 근처에 손님 맞으려고 남겨놓은 홍시

주차장에는 몇 개 남은 홍시가 쓸쓸히 매달려 있다. 누구를 위한 홍시인가? 간혹 까치가 날아들어 여기저기 한 입씩 맛보기로 삼고 있다. 궁을 떠나 이곳으로 낙향한 경순왕은 사뭇 적적했다. 금테두리 두르고 상다리 부러지도록 향연을 베풀었던 지난 날의 그리움과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서글픔이 교차했으니 말이다. 이를 알고 있는 주지 스님은 경순왕을 가까이에서 만나며 그의 숨소리 하나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왕대사 감나무
               고요한 아침

 

주지께서 경순왕 맛 보시라고

절 입구에 심은 감나무

홍시가 주렁한데

아무도 손대지 않더니만

 

산 까치가 한 입 두 입

아침 저녁으로 오락가락

주린 배를 채우느라

겨우 내 손님되어 분주하다.

 

홍시 하나하나마다

부처의 자비가 가득담겨

배부른 까치도 바라보는 주지의 눈빛도

흐뭇하게 웃음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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