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일요일 전국 비소식이다. 바람도 꽤 분다고 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집에 콕 하고 소파나 비벼대고 있으라고? 그거 아니지. 비 좀 온다고 낚시꾼이 낚시를 안하나. 과감하게 무창포항으로 내달린다. 비 오는 날 바다낚시에 도전해 본다.
무창포항 수산시장 낚시 가게에서 물어보니 멀리 던지지 마란다. 50 미터만 던지면 충분하다고 한다. 50 미터라. 샌드웨지로 어프로치 50미터는 얼추 홀컵 근처 어디쯤 떨어뜨리겠는데 묶음추를 던져서 50 미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힘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내가 프로도 아니고 어쩌지?
최대한 힘빼고 살살 던졌다. 50 미터를 넘지기 않으려고 살살 던졌다. 이런 평상시 보다 더 멀리 날아가네. 니가 골프공이냐. 힘빼고 던지니까 더 멀리 날아가게. 여하튼 두 대를 폈다. 바람을 등지고 앉아 보기는 처음이다. 항상 맞바람 이었는데 오늘은 왠일로 뒷바람이지? 뒷 바람인데도 낚시대가 흥청거린다.
빨간등대 끝 계단 아래에 못보던 것이 생겼다. 수심의 높이를 측정하는 것 처럼 생겼다. 릴링하다가 걸릴 수 있으니 방향을 피해야 할 것 같다. 물 속에 어떤 선들이 연결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뱃길 속에 숨어 있는 우럭이랑 놀래미와의 핫라인 이라면 좋으련만.
비가 와도 조사님들은 오신다. 비 오는 방파제 낚시는 운치있다. 비 온다고 낚시 안하나. 남들 없을때 더 여유롭게 낚시할 수 있어 좋다. 우럭도 도다리도 내가 던져주는 지렁이 외에는 먹을 것이 없겠지. 결국 이거 물게 되어 있어. 자신감 하나로 도전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건지. 흔들리고 싶은 건지. 초리대는 잠시도 쉬지 못했다. 기상예보와 달리 바람이 대단하게 분다. 쉬지 않고 흔들어대는 초리대를 바라보고 있자니 헷갈리기도 하고 슬슬 짜증도 날만한데 나의 인내심이란 대단한가 보다. 그 와중에 어신이 왔다는 걸 알아챈다는게 나도 낚시꾼이 맞긴 하나보다. 묵직한 맛은 없다. 첫 손님으로 망둥어 한마리가 인사를 하네.
우럭이 아니면 어떠하냐. 놀래미가 아니면 어떠하냐. 초리대 흔들리는 모양새만 봐도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더 뭘 바랄까. 비 오는 날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사람의 손 끝에 전해져 오는 너의 떨림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커피 한잔이 급 땡긴다. 떨림의 행복과 그윽함의 행복 두 가지를 다 느껴보고 싶다. 나 없는 동안 각각 한 마리씩 물어 놓도록.
무창포 방파제로 들어오는 입구에 GS25 편의점이 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뽑았다. 점심도 해결할 겸 김밥도 하나 샀다. 무창포 해수욕장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 나름의 기쁨이다. 남들은 몇 년에 한번 가보는 해수욕장 일텐데 이렇게 편하게 올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다. 특히 비오는 날의 정취란. 바닷가를 바라보면서 마시는 커피의 그윽함이 좋다.
비가 점점 강해진다. 덩달아 바람도 거세지네. 우비 입고 우산 쓰고 만반에 대비를 한다. 나는 낚시꾼이다. 비 오는 것 무섭지 않다. 바람 부는 것도 두렵지 않다. 초리대 못봐서 챔질 제 타이밍에 못해 고기를 놓칠까봐 그것이 두렵다. 우럭이 얼마나 열받겠냐. 죽어라 물어줬더니 챔질도 안해. 에이 기분나뻐 하면서 도로 뱉어버릴까봐 그게 더 무섭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낚시배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빗줄기 거세도 낚시는 한다.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배들이 자꾸 들어오는 걸 보니 조황이 썩 좋지 않은 듯 하다. 낚시배 예약하고 얼마를 기다려 멀리 무창포까지 왔는데 비 소식에 가슴이 무너졌을까. 비 맞아도 좋으니 그래도 나간다는 일념으로 아침에 출발했으나 점심 이후부터 쏟아지는 비에 고기들이 다 입을 다물었나 보다.
쏟아지는 비를 우산으로 버티며 기다려 봤으나 불가사리 한마리 더 올라오고는 더 이상 입질이 없다. 빈 방파제를 혼자 지키려니 쓸쓸하다. 주위에 몇 명 있으면 같이 의지하면서 고기를 기다려 볼텐데 왠지 허무한 생각이 들어 낚시대를 접었다. 비 오는 날 방파제 낚시는 운치와 함께 세상 고독을 모두 가져다 커피 한 잔으로 달래만하다. 그러나 기대할 만큼의 소득이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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