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날씨 치고는 따뜻했던 주말. 오후 3시 기온이 영상 13℃를 오르내렸다. 바람도 파도도 잔잔했던 겨울 대천해수욕장에 모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코로나의 답답함을 피해 가족 단위로 오신 분들이 많아 보였다. 머드 광장에서 좌우를 살펴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바닷물 근처까지 나와 있다.
어느 쪽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대천해수욕장 짚트랙 방향으로 멀리 도다리 원투 낚시하는 분들이 보여서 구경삼아 발걸음을 옮긴다. 평상시보다 많은 조사님들이 낚시를 즐기고 계셨다. 서로 방해되지 않도록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짚트랙이 상당히 멀리 보이는데도 낚시하시는 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게 바다가 말한다.
고요한 아침
바다에 쏟아지는 겨울
바다는 더 시퍼렇게 하늘을 담고
겨울은 바람 속에 아파합니다.
바다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저리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는지
헤이즐럿 향이 식어갑니다.
겨울은 하나 둘 빈자리를 남기고
그렇게 바다와 함께 떠나가네요
낚시야 늘 그렇듯 자신과의 대화이다. 그리고 바다와 자연과 고기들과의 대화이다. 꼭 잡아야만 맛이 아니지만 그래도 몇마리 잡아주면 더할 나위 없다. 과연 저분들은 묵직한 손맛을 봤을까? 초릿대 요동치는 설레임을 봤을까? 아니면 푸른 하늘과 넓은 수평선을 구경했을까?
눈치를 봐서는 아직은 한마리도 잡지 못한 듯 하다. 고기야 때되면 잡히겠지. 지금 당장 아니면 어때. 고기잡는 타이밍이라는게 있지 않은가. 잡히는 타이밍. 지금까지는 아니었나? 다가가서 물었다. 낚시 몇 시간동안 하셨냐구. 그분은 약 세시간 정도 있었다고 했다. 입질은 있었냐고 물었더니 한 두번 있었는데 허탕이었다고 했다. 도다리들이 지렁이 냄새에 끌려 모여 왔다가 감질나게 맛만 보고 그냥 갔나보다.
미끼를 뭐 쓰시는지 궁금해서 봤다. 염장 하나, 생물 지렁이 두 개였다. 혼무시인가? 벌써 한 통은 다 비웠고 두 통째 쓰고 있었다. 한 통을 다 비웠다는 이야기는 그럼 뭐가 미끼를 뜯어먹었다는 이야긴데? 도다리들은 공격성이 강해서 야무지게 덤벼들텐데 꼬리만 살짝 살짝 따먹었다는 건가? 해답을 얻지는 못하고 옆 조사님들에게 이동해보자.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도 관심을 보이고 물어보고 사진도 찍고 보통 그렇게 한다. 내가 잠깐 서 있는 동안 아무도 조사님들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말을 붙이는 분들이 없었다. 낚시에 관심이 없더라도 몇마리 잡았는지 뭐 잡고 있는지 이렇게들 묻는데. 뒤로 멀찌기 돌아서 걸어다니기만 할 뿐 말을 붙이지 않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 잘 붙였는데 하필 내가 있어서 그런건가?
온 마음 간절하게 캐스팅을 한다. 푸른 바다 저 멀리 날리고 싶고, 내가 점찍어 놓은 그 방향으로 반듯하게 날리고 싶고, 이왕이면 도다리가 가득 모여 있는 곳 한가운데로 투척하고 싶고, 날아가면서 미끼가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짧은 순간이지만 온 마음을 집중해서 캐스팅을 한다.
조금 더 이동하니 친구인 듯 조사님 두 분이 담소 중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순간적으로 달라보였다. 신발이 장화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여기는 평평한 지형이니까 장화를 신고 물 안으로 적당히 걸어들어가서 캐스팅하면 물 밖에서 던지는 것보다 최소한 20미터는 더 날릴 수 있지. 게다가 조과통에 물을 받으려면 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가능하다. 이런 백사장에서 물 밖에 선 상태로 조과통에 물을 받는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 신발을 버리지 않고는 솔직히 불가능하다. 어떤 분들은 조과통에 줄이 달려 있으니까 바다 안쪽으로 던져서 물을 받는다는 분도 계신다. 나는 잘 안되던데... 여튼 장화를 보는 순간 한 두번 와보신 분들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이분들은 한 마리 잡았다. 크기는 생각했던 그대로다. 깻잎. 조사님들은 이만한 크기의 도다리를 깻잎이라고 표현한다. 작다고 무시하지 마라. 세꼬시 해먹기에 딱좋은 크기다. 더 크면 뼈가 굵어져서 만만치 않다. 이런 깻잎 대여섯 장만 있으면 세꼬시 한 접시 뚝딱이다. 한 마리만 있는 걸로 봐서 오늘은 전체적으로 도다리 작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잔잔하고 물때는 완전 간조 타임인데 도다리가 안나오네.
조사님들 바로 뒤에는 짚트랙과 레일바이크가 있다. 왁자지껄 웃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레일바이크를 즐기고 있다. 강원도 정선에서 레일바이크를 예약하려다 결국 실패하고 못탔던 기억이 있는데 이곳은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바로 출발하고 있나 보다. 행복한 표정들 맑은 하늘 아래에서 더 아름다워 보인다.
서울에서 왔다는 팀원들이 맨 끝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오호. 이분들은 총 두 마리를 잡아 놓으셨네.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 가장 많은 조과를 올리셨네. 축하를 전해드리니 놀라신다. 여기 계신 분 전체 중에 우리가 가장 많이 잡은 거냐고 놀라신다. 사실이다. 오늘은 대체적으로 조과가 좋지 않다. 평상시에는 다들 서너마리 이상씩은 조과통에 넣어놓고 있었는데 오늘은 아직까지는 아닌가 보다. 조금 더 있으면 밀물이 시작되니 그때 갑자기 쏟아져 나올지도 모를일이다. 낚시라는 건 항상 그 타이밍이 있다. 막 쏟아지는 한 두시간. 지금 당장 소식이 없어도 어느 한 순간에 바빠지며 손 맛 땡기는 순간이 온다.
다시 머드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걸어 나오는데 두 조사님이 열심히 릴링을 하고 있다. 동시에 챔질하고 릴링을 하는 걸 봐서는 뭔가 있다는 신호인데. 잠깐 지켜보는데 달려 나오는 건 없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물때가 밀물때로 바뀌면 초릿대가 움직이니까 오랫만에 설레일 수도 있잖은가. 낚시는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하는 거다.
이제 곧 노을이 질텐데. 그냥 걸어도 좋고, 핫도그 하나 사먹어도 좋고, 커피 한 잔 들고 다녀도 좋고, 손 맛 느끼는 도다리 낚시도 좋고, 빠알간 노을도 좋고. 겨울 대천해수욕장을 찾은 모든 분들이 힐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모래사장에 많은 이름들과 하트 표시가 그려져 있다. 영원히 사랑하시기를. 비록 저 이름들과 하트 표시는 밀물이 들어오면 다 지워지겠지만 그 마음 영원하시기를 기원해 주고 나도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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